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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봅시다


박형, 무심한 바다를 보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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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환연 (121.♡.71.57) 댓글 0건 조회 2,489회 작성일 12-05-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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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 무심한 바다를 보 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 오마이뉴스

실의에 빠진 태안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박형, 사느라고 바빠서 몇 달째 소식 전하지 못했습니다. 연말쯤 시간을 내어 그곳에 놀러 가 묵은 이야기도 하면서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다를 뒤집어 놓 은 엄청난 사고를 접하고 무어라 위로의 말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 모집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하루 훌쩍 다녀오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하루라도 다녀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신청을 했습니다.

 

당일 목적지는 사목 해수욕장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상당히 외진 곳이라서 그런지 오전 7시 반에 서둘러 출 발했는데도 9시가 훌쩍 넘어서 도착하더군요. 버스에서 내려 노란 비닐 옷을 걸치고 작업장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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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입구의 안내문. 놀러온 사람이 감 히 쓰레기도 버리지 못하던 곳이었습니다
ⓒ 유신준
icon_tag.gif태안 사목해수욕장

 

마침 그곳에서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던 주민 분들의 안내 를 받았습니다. 안내가 없었더라면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 했을 텐데 일 할 곳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황 중에도 주민들이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 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해수욕장은 마침 썰물 때라서 물이 빠지는 중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복구활동으로 바닷가 모래 벌은 제 모습을 찾은 듯 보였습니 다. 플라스틱 각삽으로 시커먼 기름을 퍼올리던 TV의 정나미 떨어지는 광경을 생각하면, 노란 모래 벌은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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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물스런 검은오물 타르덩어리. 바닷가에 지 천입니다
ⓒ 유신준
icon_tag.gif태안 기름오염

 

작업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비교적 사 고지점과 먼 곳이라 전 면적이 기름을 뒤집어 쓴 곳은 아니었지만, 바닷가 갯바위는 군데군데 기름찌꺼기로 엉망이었습니다. 수려하던 바위들이 흡사 도로포장 후 남은 아스팔트 찌꺼기라 도 뿌려놓은 듯 처참했고, 멀쩡해 보이는 돌멩이도 뒤집어보면 끈적끈적한 기름덩이가 묻어 있 기 일쑤였습니다.

 

물 빠진 곳을 따라 조금 들어가 보니 그곳도 성치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연 굴이 다닥다닥 붙어서 하얗게 보이던 바위는 시커먼 기름을 뒤 집어쓰고 헐떡였습니다. 옹기종기 갯바위에 붙어살던 고동들도 굳게 잡고 있던 빨판에 힘이 빠 져 바위에서 스르르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기름을 둘러 쓴 바닷가는 서서히 검은 죽음을 맞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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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굴로 하얗게 보이던 바위는 시커먼 기름 을 뒤집어쓰고 헐떡였습니다.
ⓒ 유신준
icon_tag.gif태안 기름오염

 

준비된 흡착포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기분 나쁘게 끈적 거리는 검은 오물들은 뻣뻣한 흡착포로 잘 닦여지지도 않았습니다. 매끄러운 돌은 그래도 형편 이 나은 편이었습니다. 대개의 갯바위들은 거칠고 굴곡이 심했는데 사이에 낀 원유찌꺼기는 꼬 챙이로 일일이 파내야 했습니다.

 

파내어서라도 깔끔하게 지워질 흔 적이라면 그나마 일하는 보람이라도 생겼을 것입니다. 제거하고 돌아서면 검게 번쩍거리는 오 물들의 흔적은 우리들을 허탈하게 했습니다. 마치 바위가 기름이라도 머금은 듯 걸레로 닦아 도 닦아도 돌아서면 다시 번쩍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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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기름이라도 머금은 듯 걸레로 닦아도 돌아서면 다시 번쩍입니다
ⓒ 유신준
icon_tag.gif태안 기름오염

 

어떤 바위는 바위 전체가 기름폭격이라도 맞은 것 같았습 니다. 기름범벅이 된 바위는 함께 간 동료들 몇 사람이 함께 달라붙어서 닦아봤지만 소용이 없 었습니다. 거친 표면에 자리잡은 끈적끈적한 원유찌꺼기는 바위 속속들이 스며들어 제대로 닦 여지지 않았습니다.

 

바닷가에 흡사 자동차 정비공장이라도 차려놓 은 듯 사방에 기름걸레가 질펀하고 주변에 기름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인가. 쓴 웃음만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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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갯바위에 붙어살던 고동들도 스르 르 떨어져 내렸습니다.
ⓒ 유신준
icon_tag.gif태안 기름오염

 

바다를 바라봤습니다. 그곳에 놀러 갔을 때, 박형의 안내 로 바닷가를 돌아보던 여름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깎아지른 절벽과 수려한 바위들을 보며 이곳에 살면 그까짓 해금강 하나도 안 부럽다고 했었지요.

 

풍경만 죽여주는 게 아니라며,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닷가를 살피면 어지간한 반찬거리 정도는 걱정하 지 않고 산다며, 박형 얼굴에 자랑스럽게 스치던 미소가 생각났습니다. 흐린 하늘아래 펼쳐진 바다는 엊그제 같은 그날의 추억들이 무참히 부서진 현장이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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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끈적한 원유찌꺼기는 바위에 스며들어 제대로 닦여지지 않습니다.
ⓒ 유신준
icon_tag.gif태안 기름오염

 

사실, 기름유출 사고 이후 태안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 습니다. 엄청난 사고를 일으키고도 처리 결과만 바라보며 꿀먹은 벙어리인 관련 기업의 행태 를 보면 그쪽은 쳐다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일 저지른 놈들은 멀쩡하게 따로 있는데 죄없는 국민들이 뒤치닥꺼리를 떠안는 이 나라의 이상한 관습을 생각하면 더욱 외면하 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꿀먹은 벙어리'는 스스로 이 땅의 일류라 칭 하는 삼성이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사과의 말 한마디가 삼성의 품격을 높였으면 높 였지, 명예를 깎아먹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CEO의 말 한마디가 평상시 어마 어마한 돈을 들이는 기업이미지 광고보다 훨씬 효과가 클 터였습니다. 이 땅에 터 잡고 살아 온 '일류기업'이라면 우선 대국민 사과부터 하고 수습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가 아 니었던가요?

 

혹자는 삼성이 얼마나 복구에 열심인지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이 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사고 당사자로서 필요한 것은 공식적 인 사과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자신이 얼마나 '법률적으로' 잘못이 없는지를 계산하 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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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물이 고인 곳이면 어디든 번쩍이는 유 막이 생깁니다
ⓒ 유신준
icon_tag.gif태안 기름오염

 

명문대 나온 머리좋은 사원들이 득실거리는 시스 템에서 나온 사건해결 시나리오라면 더욱 실망스런 일이었습니다. 관련자가 미궁인 사건도 아 니었고 사고의 당사자인 것이 명백한 이상 일단 사과를 하고 복구에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조사결과가 나오면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한다면 적어도 전 국민의 욕을 바가지로 듣는 사태 는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는 무슨 일이 생기 면 전 국민을 '자발적인 해결사'로 동원하는 이상한 관습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일 저지 른 놈들은 멀쩡하게 따로 있는데 자원봉사다, 성금이다, 하며 전 국민이 해결사로 나서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온 국민을 거리로 나앉게 한 IMF는 전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으로 슬 쩍 넘어가 버렸고.

 

자원봉사나 성금모금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 다. 불시에 어려움을 당한 이웃은 당연히 도와야지요. 그러나 터진 일의 수습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내 단단히 버릇을 고쳐놓는 일입 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지나가 버리는 습관 때문에 잊을 만 하면 이런 불행이 반 복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사결과가 나온다 해도 그걸로 그냥 끝나 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책임을 모면해 보려고 유능한 변호사를 있는 대로 동원해, 항소다 상 고다 하며 몇 년 세월은 족히 보낼 겁니다.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엄청난 사건은 까맣게 잊혀지 고 불행은 다시 반복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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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거리는 검은 오물들은 뻣뻣한 흡착포로 잘 닦여지지도 않습니다
ⓒ 유신준
icon_tag.gif태안 기름오염

 

심난한 마음에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자원봉사랍시고, 잠 깐 다녀가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앞으로 긴 세월을 두고 다가 올 바다의 저주를 생 각을 하면 끔찍해집니다.

 

그러나 정작 가슴이 답답한 것은 생태계 회복에 20년이 넘게 걸린다는 보도때문이 아닙니다. 시꺼먼 기름을 수천 톤 뒤집어쓰고도 아 무 일 없는 듯 찰랑이는 무심한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갯벌의 수많은 생물들을 품어 길러낸 너른 가슴이 찰랑거리는 물결 속에 하루하루 무심히 죽어가는 것을 보면 더 없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박형이 인연이 되어 태안을 알게 되었고 태안 을 생각하면 언제나 소박한 바닷가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대통령선거마저 톱기사에서 내려버 린 사상초유의 해양오염 사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시나브로 잊혀지겠지요. 자연의 위대한 힘으 로 죽음의 바다는 언젠가 회복되겠지만 푸른 바다위에 떠 있던 검은 오물들과 함께 태안 바다 는 우리들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겁니다.

 

잊지 않을 겁니다. 기 름유출이란 엄청난 사고를 당하고도 속수무책이었던 우리의 둔감한 초기 대응을, 삼성의 뻔뻔 한 부도덕과 몰염치를, 시커먼 바다를 바라보며 절망하는 죄 없는 태안 사람들의 울분을, 갯바 위를 기름걸레로 닦아내며 가슴 속에 맺힌 온국민의 응어리들을 잊지 않을 겁니다. 검은 오물 들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박형의 소박한 꿈과 함께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 억할 겁니다. - 2007. 12. 22.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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