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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본 개신교 개혁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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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독환경운동연대 (125.♡.78.162) 댓글 0건 조회 1,646회 작성일 17-04-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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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교신학회 주제발표문 : 기후변화로 본 개신교 개혁의 과제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종교개혁과 기후변화
500년 전,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에서 새로운 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종교의 타락과 무능함을 바로잡으려 했던, 훗날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운동은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은 활판인쇄의 활용을 통해 정보전달 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고, 이는 인류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전의 역사에서 벗어나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과학기술 진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종교개혁은 부르주아라는 신흥 계급의 욕구과 맞물려 근대민족국가의 체제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고, 근대민족국가 체제의 경쟁적인 식민지 자원의 약탈은 산업화라는 지구적인 자원의 소비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산업 활동의 시대로 인류와 지구의 역사를 이끌었습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 인류의 과학기술을 통해 이루어진 산업화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지구 온난화라는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밝혀졌습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사용된 화석연료가 대기 중에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고, 비와 비례해서 지구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기후변화는 사기극이다.”라고 애써 현실을 부정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뿐이지 기후변화는,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문명과 지구 생태계의 파국은 너무나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기후변화의 원인을 500년 전의 종교개혁의 탓으로 돌리려거나, 종교개혁의 의미를 희석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이 인류의 문명사만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도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오늘 또다시 500년 전의 종교개혁과 같은 개혁운동이 일어나 기후변화의 파국으로부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창조세계의 구원이 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류와 지구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새로운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 순간에 종교는 5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타락과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잡이가 되어야 할 종교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앞두고서 혼수상태에 빠져 제 앞가림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교회를 향한 신뢰와 기대는 바닥을 치고 있는데, 교회 안의 소위 성직자들은 자신의 위치에 무척 만족하고 행복해합니다. 이제 종교가 눈을 뜨고 자기도취로부터 벗어나 위태로운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게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6번째 대멸종의 시기 : 기후변화의 현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의 25%, 조류의 12%, 파충류의 25%, 어류의 33%인 1만7천여 종의 생물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멸종의 위기는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생물학자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6번째 대멸종의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전에도 5차례에 걸쳐 이와 비슷한, 혹은 이보다도 심각한 생물종의 대멸종 사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지각 변동으로 인한 대규모의 화산 폭팔이나 거대 운석과의 충돌로 인한 대기 구성 변화, 해수면 변화, 기후 변화 등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생물들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일들이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의 5번의 대멸종 사건들이 외적인 원인에 의해 일어난 환경변화가 원인이었던 반면에, 이번 6번째 대멸종은 지구상의 하나의 종인 우리 인간의 산업 활동으로 인한 지구적 기후변화가 원인입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러한 대멸종은 하나님을 탓하거나 다른 핑계를 댈 수 없는, 오직 우리 인간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알아갈수록 더욱 자괴감이 들지만 우리들이 만들어낸 이 상황, 기후변화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기후변화는 지구적인 환경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의 건조지역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급격히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해 물 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고, 그로 인한 농업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10년 전부터 기후변화 대응 사업으로 몽골 아르갈란트 지역에 나무를 심어 은총의 숲을 조성하고 있는데, 몽골의 경우만 하더라도 최근 20여년 사이에 700곳의 강과 시내, 1,500곳의 우물과 샘, 800곳의 호수가 사라졌고 그로 인해 식물종의 75%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극지방과 고산지대는 빙하와 만년설이 급격히 녹아내리고 영구동토층이 감소해서 순식간에 지형이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열대 섬 지역, 인구 밀집지역인 강 하구지역은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토지와 농지 감소가 심각합니다. 열대, 아열대 지역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대형 태풍, 허리케인이 빈발하여 피해가 심각합니다. 일부 북반구 고위도 지역은 온난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농업 생산성이 증가하고 보다 온순한 겨울을 맞는 등의 혜택을 누리기도 하지만, 기후변화는 생태계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급격한 환경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때문에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환경변화로 인해 포유류의 25%, 조류의 12%, 파충류의 25%, 어류의 33%가 멸종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동성이 부족한, 그래서 환경변화에 더욱 민감한 식물과 같은 고착생명체의 경우는 멸종 속도가 더욱 가파릅니다. 바다의 수온이 현재보다 2%만 더 상승한다면 산호의 97%가 폐사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변화는 상호의존적으로 구성된 생태계의 연결사슬을 취약하게 만들어 생물 다양성의 저하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지구 생명체의 한 종인 인간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급격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폭염 현상은 심혈관질환과 신장결석의 증가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곤충들의 서식지 확대로 인한 곤충매개 전염병의 확대되고 있어 기후변화가 확대되기 이전보다 2억4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말라리아 노출되었고, 황열, 뎅기열, 라임병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보건 시스템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가뭄과 홍수로 인한 식수의 오염으로 수인성 전염병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급격한 기후변화는 사회변화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농지와 주거지를 잃은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떠도는, 기후난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미 6,500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했고, 2050년까지 2억 명의 기후난민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변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 기반을 확보한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 간의 경제적인 불평등과 불균형을 더욱 심화,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물, 에너지, 식량 등의 자원 감소로 인한 민족, 국가, 부족 간 갈등을 심화시켜 분쟁, 전쟁, 대량학살이  빈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적인 난민사태와 분쟁의 핵심이 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 역시 지중해 지역의 기후변화가 시리아와 주변국가의 농업생산성의 급격한 저하를 가져왔고, 이로 인한 식량가격의 폭등이 내전의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수천 년의 안정적인 기후균형을 유지해오던 지구의 대기 시스템이 그 능력을 상실하여 이제 산업화 이전의 기후로의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전망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줄이거나 현재의 상태로라도 유지하지 않으면 지구의 대기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어 화성과 같이 수분이 증발하여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심각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기후상승을 2도 이내로 막아보자고 2015년 천신만고 끝에 체결된 파리 기후협약의 준수조차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지 못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는 것이 참담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종교의 개혁 과제
그렇습니다. 기후변화는 피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입니다. 기후변화는 헬조선의 문제가 아니라 헬지구의 문제입니다. 기후변화의 시대, 과연 지구에 희망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희망에 종교가 기후변화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누구의 말처럼 우리의 자녀가 불구덩이에서 서로 싸우다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최소한의 인간성을 유지하도록,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마지막까지 연주를 하는 악사의 역할을 종교가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그저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500년 전 종교가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커다란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듯이, 오늘 역시 종교가 무엇인가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인류와 지구가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질 수는 없을까요?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오늘 주제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종교의 개혁 과제’를 생각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종교가 현재의 시급한 기후변화를 먼 산 바라보듯 마냥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타락과 무능, 특히 ‘생태환경적 타락과 무능’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태환경적 타락과 무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생태환경적인 종교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종교의 개혁 과제’의 핵심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변화가 신학, 교회, 영성의 세 차원에서 동시에 있을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신학의 개혁과제
역사학자 린 화이트가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글에서 “서구의 과학기술에 의한 자연 파괴가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이용하도록 허락했다고 믿었던 성서적 자연관에 기인한다.”고 이야기를 발표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기독교 신학은 린 화이트의 문제제기 대로 인간중심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특별한 존재로써의 인간,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역사의 주인공 인간만이 신학의 주체였고 자연은 인간의 특별함을 드러내는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시대의 신학은 인간만의 신학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기후변화가 인간을 위한 신학에 기인했음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신학이어야 합니다. 기후변화 시대의 신학은 기후변화로 멸종의 위기를 맞는 열대우림의 개구리,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30일을 살다 도축되는 닭, 유전자조작기술로 살충성분을 품고 자라는 GMO 옥수수, 댐으로 막혀 거대한 호수가 되어버린 강, 관광개발을 위한 케이블카 설치로 망신창이가 되어버린 산의 구원을 다루는 지구와 생명 전체를 아우르는 신학의 자리로 돌아서야합니다.
노아의 방주가 노아의 가족만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듯이 지구는 인간만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신학이 인간만의 문제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인 생태환경의 문제는 항상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신학이 우리가 창조세계라고 고백하는 지구와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 전체를 동등한 시각으로 아우르는 우주적 생명신학의 자리에서, 하나의 작은 존재인 인간을 돌아보고 창조세계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 기후변화 시대의 신학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신학은 생명 전체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과학적 지식, 물리학, 생물학, 생태학, 지질학, 기후학과의 겸손하고 진지한 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신학은 이들 학문과의 대화를 통해 지금 지구와 생명의 존재 가운데 계시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입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가들이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후변화시대의 신학은 오직 창조세계와 생명의 신비를 만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하고, 오직 창조세계와 생명의 치유와 회복을 기도하는 것이 정점이 되어야 하며, 오직 창조세계와 생명의 풍성함을 체험하는 것이 도착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교회의 개혁과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라는 단어가 품고 있듯이 교회는 서로 다른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존재하는 것이며, 이는 창조세계의 모든 존재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 생명의 그물망을 이루며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창조세계 안에서는 작은 어느 것 하나라도 불필요한 것이 없이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 존재하듯이, 교회 안에서도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 저마다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지체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유대교 전통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종교개혁을 겪은 교회들 역시 사회적, 정치적, 민족적 차이를 넘어서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강조하며 자신만의 다른 정체성을 만드는데 힘을 쏟아왔고, 때문에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기 위한 공의회의 정신은 점점 힘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이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예수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공감을 하려하면서도 교회가 창조세계 안의 다른 생명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갖게 된 이유일 것입니다. 교회가 다른 생명의 존재와 죽음에 무감각해짐으로써 기후변화라는 대멸종의 사건의 안전장치가 풀려버린 것입니다.
기후변화 시대의 교회는 배타적인 모습을 벗어버리고 다양성을 공유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다른 성별, 다른 세대, 다른 민족, 다른 인종, 다른 정체성, 다른 생각, 다른 생명, 다른 존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보듬어주는 공동체로써 존재하는 교회만이 기후변화의 시대의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창조세계의 질서인 생태계의 다양성을 교회의 모습 속에서 보여주지 못한다면, 기후변화라는 죽음의 광풍을 교회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창조세계 그 자체인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고 회복하는 생명의 방주,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 시대의 교회는 겸손한 마음으로 사회의 환경운동, 생태운동, 생명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NGO, 생협, 녹색당과 같은 시민사회조직들과 정부의 관련 조직, 국제기구와도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기후변화로 멸종의 위기에 처한 1만7천여 종의 동물들 가운데 한 종을 살려내는 일이 예배가 되고,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활동과 국가정책을 감시하고 조정하는 일이 교육이 되고,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기 위해 사막화가 진행되는 한 지역에 꾸준히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선교가 되고, 기후 난민들을 위해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곳을 나누는 일이 친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영성의 개혁과제
예수는 밀알의 비유를 통해 씨앗이 죽어 살아있는 식물이 되어 많은 씨앗을 맺는, 한 개체가 죽음으로 분해되어 다른 개체에 생명을 더하는, 생명의 확장과 영속의 과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명을 올곧이 십자가에 내어줌으로써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생명을 불어 넣는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믿음이었고, 사도 바울은 이 예수의 믿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나라는 자아로 삶과 죽음이 별개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허상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확장과 영속을 거듭하는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실제의 모습을 깨달아야 합니다. 먼 미래의 어느 날의 영원한 삶을 위해 살아가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 한 순간 지금 여기 우리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천국으로 우리의 지향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후변화 시대의 참된 영성의 길일 것입니다. 이 길은 우리를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신비를 체험하며, 창조세계 안에 살아감을 기뻐하며,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의 창조에 동참함을 감사하는 발걸음을 걷게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마다 작고 여린 생명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이며, 외롭고 아픈 이들을 살피고 돌보는 일이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고, 철을 따라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조용히 깨닫게 됩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영성을 수련하는 길은 특별한 수련 과정이나 대단한 영성센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뒷동산 순례길을 조용히 걸으며, 땀 흘리는 육체노동을 하며, 낯선 타인과의 교제를 나누며,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는 소박한 예술을 즐기며, 살아있는 생명을 쓰다듬으며, 먼 길을 날아온 새들을 숨죽여 지켜보며, 깊은 바다의 웅장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름날 소나기 지난 하늘 무지개를 바라보며, 산꼭대기 걸린 구름의 날벼락에 깜짝 놀라며, 오랜 단식을 하며, 메말라가는 나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지금 이 순간들이 다시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을 유일무이한 영성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이러한 시간과 자리를 그리워하고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기후변화의 시대는 이제 머지않아 봄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가을 단풍을 감추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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