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에 의한 신음소리를 듣는 순간 (A4 8쪽) > 녹색신앙 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녹색신앙 이야기


원자력발전에 의한 신음소리를 듣는 순간 (A4 8쪽)

페이지 정보

작성자 기환연 (112.♡.96.190) 댓글 0건 조회 2,035회 작성일 12-09-01 17:18

본문

*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회보의 요청에 따라 작성하여 2011년 7월 30일에 기고한 글입니다.
아울러 이글을 간단히 요약하여, 베리타스에 '필요만큼 구하면서, 원전없는 세상을 꿈꾼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하였음을 밝힙니다. 평화!


원자력발전에 의한 신음소리를 듣는 순간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ecomiho@hanmail.net

첫 발을 내딛을 때만해도, 우연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우연한 선택이 아닌 필연,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고, 세상 만물이 그 분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기독교환경운동연대(02-711-8905, www.greenchrist.org)에서 내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고, '자연이 곧 나임을 알아차려 자연에게 행함이 곧 나에게 행함이며 자연을 돌봄과 나를 돌봄이 다르지 않다'는 의식을 갖게 된지 어느덧 스무 해를 바라봅니다. 그 동안 많은 이들이 함께 마음을 모았고 행했습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합성세제를 삼가고, 중고품을 사용하고, 물 전기를 아껴 쓰고, 육식을 줄이고 음식을 절제하고,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지 않고, 소비광고에 한 눈을 팔지 않고, 작고 단순하고 불편한 것을 구하고, 어려움에 처한 자연과 이웃을 도왔던 많은 이들을 보았습니다. 서해안 태안에 검은 재앙이 덮쳤을 때를 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달려가 생명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돌을 닦으며, 양적인 성장에만 골몰해왔던 자신의 삶을, 그리고 지구에게 안겨준 고통을 회개했고, 아픈 지구의 선한 이웃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열병을 앓고 있는 지구를 위해 햇빛발전소를 세우고, 차 없는 주일을 지키고, 초록가게를 열어 자원을 아끼고, 생명의 쌀로 생명밥상을 차려 남김없이 먹는 교회들도 제법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지구의 신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갑니다. 기후붕괴로, 4대강 공사로,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 살처분으로, 원전 사고와 방사성폐기물에 따른 방사능 공포로,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모두가 고통 가운데 절망하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모두가 ‘살려 달라’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개발, 인간의 행복’이라는 우상에 미쳐 달려가기만 하는 우리들로 인해, 온 몸에 상처투성이인 채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으로 깊어가는 신음소리

특히 지난 3월 11일 있었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사고가 빚어낸 고통의 소리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그 곳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과 연이은 후쿠시마 제1 원전의 1, 2, 3, 4호기 폭발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를 방사능의 공포에 크게 떨게 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은 지금도 대기와 바다로 방출되고 있어 언제까지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1986년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를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크고 오랫동안 계속될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고는 인접 지역에만 그치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해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를 넘어 유럽 각국에서 나타났습니다. 스웨덴의 순록과 영국의 양들은 집단 매장 처분을 당하고, 유럽 각국의 우유가 폐기처분되었습니다. 당시 사고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가장 보수적인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복구 참가자 중 3개월 이내 사망자가 28명이었습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갑상선 질환, 백혈병, 각종 암이 발병한 이가 20만 명을 넘었고 갑상선암이 발병한 어린이는 2천명에 달했습니다(WHO의 경우 9천명 사망, 그린피스의 경우 9만 3천명 사망).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체르노빌 반경 30km 이내는 여전히 통제구역이어서 들어갈 수 없거니와 당시 피폭된 이는 물론 사고 이후 태어난 아이들까지도 암에 걸려 심한 고통 중에 있습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사람들은 아직도 신음소리에 무감각합니다. 자기 욕심에 눈멀고 귀먹어있습니다. 롬 8장을 보면, 피조물들이 고통 가운데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하나님의 자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책임을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어쩌면 자연이 우리를 저버리게 될 지도 모르지요. “너희가 원수의 땅에 끌려가면 너희의 땅은 쑥밭이 되리라. 그 동안에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제야 숨을 돌리며 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레 26:34) 우리가 피조물을 혹사시켜 고통 중에 거하게 하면, 그들이 우리를 저버리고 스스로 안식을 취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피조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장본인, 죄인이어서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과 지혜를 전과 같이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를 일컬어 “스스로 지혜 있다하나 우둔하게 된다”(롬 1:22)고 했고, 예레미아 선지자는 타락한 인간이 창조주의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렘 5:21~22)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동산에 숨어 책임을 전가하다가 종국에는 하나님을 비난했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귀를 쫑긋 세워 원전 사고와 방사능 누출로 크게 신음하고 있는 피조물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 아니라, 애써 들으려고 해도 듣지 못하고, 또 들어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자력발전’이란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는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원인을 제공한 ‘원자력 발전’이 무엇인지 알면 해결책도 명확해질 테니까 말입니다. 원전에 의지해 지나친 풍요와 편리를 누리고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계실 하나님의 눈으로 차분히 이해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이로서,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으로 활동할 때 원전의 문제를 일깨우기 위해 힘썼던 김영락 목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93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 그 93가지의 원소 중에 가장 가벼운 것(원자번호 1번)이 수소이고 가장 무거운 것(원자번호 93번)이 우라늄이다. 그 가운데는 산소, 질소, 칼슘, 철, 알미늄, 납, 금, 은 등이 있다. 이들 원소들은 상온에서 기체, 액체, 고체로 존재하는데, 서로 결합하여 물, 돌, 나무 등 온갖 생물과 무생물을 이룬다.

이렇듯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최소 단위는 원자인데, 그 원자는 태양계와 같이 가운데에 핵이 있고 주변에 전자가 돌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가장 작은 원자의 세계와 가장 큰 우주의 모습이 닮은 꼴이니 얼마나 오묘한가? 그런데 원자는 또 ‘핵’(核)과 ‘전자’(電子)로, 그리고 ‘핵’(혹은 원자핵)은 다시 ‘양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 핵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원자력’이라고 한다. 핵을 분열시키거나 융합시키면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그 원자력을 순간적으로 발산시키는 것이 ‘핵폭탄’이고, 천천히 발산시켜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현대사회에서 이같은 원자력 발전은 ‘현대판 선악과’요 ‘물질주의의 상징’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물질의 구조를 인위적으로 깨뜨리면서 탐스럽기도 하고 먹음직도 한 ‘제3의 불’을 취하려 하는 것은 ‘탐욕’이다. 그리고 핵반응은 태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데, 그를 통해 에너지를 취하려는 것은 ‘교만’이다.”

이러한 원자력발전의 시작은 1953년 말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UN에서 행한 ‘평화를 위한 원자력(Nuclear for Peace)’ 연설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핵폭탄으로 개발된 원자력을 평화적 혹은 상업적으로 전환, 이용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핵의 최초의 이용형태는 불행하게도 군사적 이용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때 이후로 원전은 계속 늘어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모두 442기가 가동되고 있습니다(2011년 3월 현재). 거기서 생산되는 전력은 전체 전력의 15%입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155기 이상의 원자로가 추가 건설될 계획에 있는데, 현재 건설 중인 것만도 65기에 달합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일본은 미국(104기)과 프랑스(58기) 다음으로 많은 54기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로 전력의 3분의 1을 충당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를 세운 이래, 현재 부산시 기장군에 고리원전 5기, 경주에 월성원전 4기, 전남 영광군에 영광원전 6기, 경북 울진에 울진원전 6기, 총 21기가 가동하고 있습니다. 시설용량으로 보면 세계 6위입니다(2008년 현재). 발전량으로 보면 총 전력의 31.4%인데, 계획에 의하면 2024년에 48.5%가 되어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가 될 것입니다(밀집도로 보면 세계 1위).

원자력발전으로 고통받고 사는 이들

원자력발전은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원전 노동자, 특히 일용직 노동자의 희생에 기초합니다. 한전 직원이 주로 컴퓨터를 이용한 중앙제어실 운영과 작업지시 감독 등 비교적 깨끗한 일을 하는 반면 한전 노동자들은 궂은일을 맡습니다. 그중 가장 위험한 일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합니다. 파이프 보수공, 연료교체 작업, 전기보수 등 순간적으로 피폭에 노출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원전은 이들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돌아갑니다. 방사능 피폭 허용치를 보면 노동자들은 일반인보다 50배나 많은 50mSv입니다.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방사능에 강한 특수체질이거나 방사성 물질에 면역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때론 생계를 위해 그 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기도 합니다.

원전 인근 주민과 뭇 생명들도 고통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원전은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1초에 68톤의 바닷물을 끌어다 온배수로 내보냅니다.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에너지는 70%가 버져 바다를 오염시키고(thermal pollution) 오직 30%만이 전기로 사용됩니다. 그로 인근 해역의 수온이 크게 상승되어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근 주민들이 여러 형태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관련 주민들도 그렇습니다. 사용후핵연료 곧 고준위폐기물보다는 위험이 덜하다는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짓기 위해, 안면도, 굴업도, 부안을 거쳐 경주로 결정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이 겪은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가동 중인 원전은 수십 종의 방사성 폐기물을 생성하는데, 한 가정의 1년치 소비전력을 만든 핵연료가 타고 나면 그 안에는 약 50~60조 베크렐, 즉 약 5만 명이 암에 걸릴 수 있는 방사능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가동에 필요한 보조 산업 즉 농축, 가공, 재처리 및 운송과정에서도 많은 양의 방사성폐기물이 나옵니다.

원자력발전의 제 문제

이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자력발전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 네 가지 장점을 강변합니다.

첫째는, 원전의 원료인 우라늄은 쉽게 고갈되지 않아 오래고 안정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른 발전에 비해 경제적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아 지구온난화 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보안과 안전관리가 철저해 사고가 일어날 염려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주장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아니 역으로 그 자체가 결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연료인 우라늄 매장량의 한계 때문에 원자력은 마냥 늘릴 수 없습니다. 고속증식로가 널리 확대될 수 있다면 사정이 나아질 수 있겠지만, 이미 고속증식로는 기술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라늄의 가채연한은 5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것도 원전의 수가 늘면 줄어들게 됩니다.

둘째, 원자력발전이 경제적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습니다. 원자력의 발전 비용만 놓고보면 아직까지 화석연료에 비해 저렴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후원전의 해체비나 방사성폐기물 처리비가 아닌, 건설비용만 고려해도 원자력발전은 화력발전은 물론 그 어떤 재생가능에너지원보다도 비쌉니다. 세계적으로 원전의 건설비용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건설기간 역시 점점 길어지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원전업계는 투자비를 회수하고 폐쇄비용의 지출을 지연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고, 우리도 이미 고리 1호기를 10년 수명연장하고 월성1호기도 연장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원자력발전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양길에 있는 원전산업을 일으키려는 논리에 불과합니다. 발전과정만 보면 화력발전에 비해 배출량이 적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라늄 채굴, 제련, 운송, 원전 건설, 방사성폐기물 처분 등 전 과정을 포함시키면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인 IAEA는 원전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를 2030년까지 10%, 2050년까지 6%로 내다보고 있습니다(에너지 효율과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70~80% 감축 예측).

십분 양보하여 인정한다 하더라도,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가 아닌 그보다 더 위험한 방사능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위험성은 독성이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 ‘반감기’로 표시되는데, 적게는 수일에서 수만 년까지 걸리는 방사성 물질에 따라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방사성 물질은 호흡이나 먹을거리를 통해 체내로 들어가서도 계속 방사능을 내놓아 당사자는 물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에게도 치명적 피해를 입힙니다. 그래서 혹자는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것을 일컬어 결코 탐해서는 안될 ‘현대판 선악과’를 따먹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넷째, 드리마일(1기)이나 체르노빌(1기), 그리고 이번 후쿠시마(4기) 사고에서 보듯, 원자력발전의 안전신화는 깨졌습니다. 사고는 당대 최고의 원전기술과 안전시스템을 자랑하는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원전을 옹호하는 이들은 원전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백만분의 일, 즉 영에 가깝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세계 442기의 원전 중 6기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으니 1기당 사고 확률은 1.36%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로 보면 우리나라는 21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니까 사고확률이 24%나 돼 안전하다고 방심해서는 곤란한 상황입니다.

더욱이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와 고장이 매년 반복되고 있습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서만도 200회에 가까운 고장이 발생했다는데(연평균 17.5회), 울진 원전에서는 증기발생기 세관이 터져 끊어지는 파단사고가 일어났고, 태풍 루사가 왔을 때에는 발전소 안에 빗물이 누수되었고, 대전 연구용 원자로에서는 중수가 누출되는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2007년 수명이 끝났던 고리1호기의 경우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은 후에 전원공급기기의 고장이 생겨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었습니다. 고리1호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은 전체 전력소비량의 1%에 지나지 않는데, 이렇게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잦은 사고가 인재(人災)든 천재(天災)로 이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결함 이외에도, 원자력발전은 사용후핵연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한 개의 우라늄 펠렛에서 1년치 전기를 생산하면, 5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방사성물질도 같이 나온다고 합니다. 세계 원자력발전의 역사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 단 한 곳도 이를 처분할 수 있는 곳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누적량은 30만 톤에 달하고, 매년 만여 톤이 추가되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원전 내에 임시 보관 중인데, 2016년이면 한계에 달한다고 합니다. 10년에 걸쳐 잔열을 없애야 하고 완전히 안전해지려면 10만 년이 걸린다니, 이것을 묻을 곳을 찾는다는 것이 앞으로도 가능할 지 모를 일입니다. 혹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25~30% 정도가 그런 폐기물을 만들어내면서 생산되는 것이니 그 만큼의 전기의 사용을 줄일 수는 없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전력이 부족해도 인간다운 삶은 얼마든지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핵분열에 의한 환경파괴는 삶의 종식을 의미한다. 핵발전소를 없애면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지나치게 한가로운, 우둔한 물음이다. 대안이 있든 없든 핵 발전은 시급히 중지해야 한다.” <김종철, ‘핵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할까’, 녹색평론 2011년 5~6월호>

원자력발전의 신앙적 문제

하나님은 맨 처음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창 1:3). 빛은 에너지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지금껏 사용해온 석유, 석탄 등도 먼 옛날 동물이나 식물이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에너지를 축적하여 화석화시킨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원자력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자를 분열시키거나 융합시킴으로써 얻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태양이나 별의 것이며, 거기에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를 알고도 원자력발전을 절대시하며 수명을 연장하거나 신규발전소를 계속 짓는다면 그것은 현대적 의미의 ‘우상숭배’요, 정의 평화 창조질서에 어긋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정의의 측면 : 약자 피해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라. 지금은 너희가 주를 찾을 때이다. 묵은 땅을 갈아 엎어라. 나 주가 너희에게 가서 정의를 비처럼 내려 주겠다.”(호 10:12)

원전은 대부분 약자들이 기거하는 곳에 건설되었습니다. 또 원전은 방사능 피폭으로 죽거나 고통 받는 이들 없이는 단 1kW의 전기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 후보지였던 안면도, 굴업도, 그리고 부안은 물론 부지로 선정된 경주 역시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방사성폐기물은 미래세대로 그 위험을 떠넘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의 대부분은 대도시와 공장에서 소모합니다. 원전이 위치한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 주변 지역의 농어민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농어민들은 고향을 잃고, 농수산물의 생산이 줄어들고,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이나 가축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도시의 소비문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농어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정의로운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 평화의 측면 : 핵무기 개발과 폭격 위험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평화를 증진시키기는커녕 세계를 갈수록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자로에서 핵분열의 결과로 생겨난 방사성 물질을 분리 재처리하면 자연 상태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극렬한 맹독성 물질이자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일본의 플루토늄 생산은 그 자체로 일종의 핵확산이며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지적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핵의 처음 탄생도 그렇고, 지금도 핵무기 개발 차원에서 원전을 탐내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는 점은 위기감을 더합니다. 그리고 원전은 한 국가의 에너지을 공급하는 데 이바지하므로,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1차적 파괴 목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1981년 6월 이스라엘 공군기가 핵개발의 의혹을 받고 있던 이라크의 '오시라크'원전을 폭격했고 또 걸프전에 참전한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이라크의 원자로 4기가 파괴되어 방사능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었습니다.

- 창조질서의 측면 : 생태계 파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5)

원자력발전은 방사능으로 인한 생명의 죽음과 생태계 파괴를 일으킵니다. 이러한 죽음의 에너지를 풍요와 편리를 위해 쓴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며 거역하는 것입니다. 사실 자연을 인간의 정복대상으로 보았던 서구과학에 의해 그 불을 만들어냈으나 한번 붙은 불은 끌 수 없습니다. 태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플루토늄은, 거기서 나오는 방사능의 세기가 2만 4천년이 지나야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10만년이 지나야 원래의 6% 수준으로 주는데, ‘위험하다’고 하는 그 독성은 줄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더욱이 플루토늄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데, 단 몇 g만으로도 남북한 전체 인구를 폐암으로 죽게 할 수 있는 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두고 금지된 불장난을 시작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내린 준엄한 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원자력발전을 넘어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앉아있는 가지를 톱질했다. /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톱질할 수 있는지를 / 자신이 배운 것을 서로서로에게 큰 소리로 말해주었다. / 그리고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 그걸 바라보던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 그리고는 다시 열심히 톱질을 계속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당장 원전의 불을 끌 수는 없지 않느냐.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이같은 ‘원자력발전 불가피론’을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자력이 위기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계속 확대하는 것은, 오히려 해결책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지연시켜 위기를 더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클라우스 퇴퍼 전 UNEP 사무총장이 말했듯이, 원자력의 확대로 에너지 공급이 그럭저럭 원활해진다면, 그만큼 에너지 절약을 위한 기술개발이나 재생가능에너지 개발과 같은 대안 모색은 늦춰져 나중에 더 큰 혼란을 초래될 수 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원전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미 몇몇 나라들이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전을 폐기하겠다고 전격 발표하였고, 스위스도 2034년까지 스위스 내 원전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후 구체적으로 단계를 밟아가고 있습니다.

꿈도 꾸지 않은 채 체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꿈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하지 않습니까. 다음세대에게 희망을 남겨주기 위해서라도 꿈꾸며 그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일지라도 신규 원전이나 이미 노후화된 원전만이라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전력소비량입니다. 개인적으로 1991년 환경운동을 시작하며 살아있는 생명에게 핵이 가장 위협적이라는 생각하여 원자력발전의 추진논리를 살펴봤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 원전은 9기였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수는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전력소비량이 너무 증가한 탓입니다.

그런데 늘어난 그 많은 에너지가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보면, 과연 그것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과다하게 부추겨진 욕망을 채우고 있다면, 끊임없이 이윤을 좇는 이에 의해 부추겨진 욕망에 의해 낭비되고 있다면, 그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야 자신의 풍요가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초래하거나, 공기와 물과 땅이 오염되어 회복되기 어려워지고 여러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않게 할 수 있는데 걱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욕망, 탐욕엔 끝이 없습니다. 원전이 9기였던 1991년 2,412kWh이었던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05년에 7,403kWh로 3배나 증가해, 이미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국민들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2010년 현재 우리는 그 4배나 되는 9,493kWh의 전력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며 그를 채우고자 2030년 13,510kWh을 목표로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우라늄의 경우 2030년이면 2000년보다 20배나 가격이 뛰고 가채연한도 2040년부터 급강하하여 2070년이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도 말입니다. 그 때 가서 어쩔 수 없이 에너지에 대한 탐욕을 멈추기보다 우리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 세상의 자원은 모든 인류에게 충분하나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간디)
“너희들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예수)

이는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않는 이상 자연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이 입고 먹고 살아가기에 충분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제대로 알아 그 필요만큼만 채우며 산다면, 정말로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충분히 풍요로울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정말로 ‘착하고 충성된 종’(눅 마 25:21)이라 칭찬받을 것이라 믿습니다.

원자력발전에 의한 신음소리를 듣는 순간

원자력발전이 있었기에, 그동안 우리는 풍요와 편리를 맘껏 누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보듯 그러한 풍요와 편리는 계속될 수 없습니다. 원전의 위험성이 실로 크기 때문입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원전에 의한 신음소리가 그를 잘 말해줍니다.

만약 미세할지라도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를 붙잡고 깊이 묵상해봅시다. 신학자 틸리히는 ‘애정 어린 경청(Loving Listening)’을 하면 생명의 아픔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순간 지구가 치료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한 생명 한 생명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게 된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친히 치료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노후화된 원전이 포기되고 발전소가 더 이상 건설되지 않도록, 에너지를 낭비해온 삶을 회개하고 절제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낼 것입니다. 전력소비량 자체를 줄여야 하니, 에너지를 덜 쓰고, 좀 더 춥고 덥게 지내는 일에 솔선할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원자력 발전이 우리 일상생활에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지 진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원자력 폐기를 논의하고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몸에 밴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고통이 뒤따를 것입니다. 풍요와 편리를 좇아 소비에 빠져 있었던 만큼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제껏 필요 이상의 것을 누려온 것에 대한 은혜 갚음이라고 생각하고, 그 고통을 인내하다보면, 꼭 필요한 만큼 제대로 소비할 줄 알게 될 것이고,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유한 사업가가 고깃배를 세워둔 채 느긋하게 누워있는 어부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왜 고기를 더 안 잡는 거요?" "오늘 잡을 만큼은 다 잡았소." "왜 더 잡지 않나요?" "더 잡아서 뭐하게요?" "돈을 벌어 모터 다린 큰 배를 사고, 더 깊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더 잡을 수 있잖아요? 또 큰 그물을 사서 고기를 더 잡고 배를 늘려 선단을 거느리죠. 그러면 나처럼 부자가 될 수 있잖아요?" "그 다음엔 뭘 하죠?"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죠."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우리도 이야기 속의 어부처럼 오늘 구해야 할 만큼 구하고, 그에 만족하며 쉼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주시며, 지금도 우리에게 ‘하루의 양식만을 구하라’(마 6:11)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다 창조의 목적에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기억해내고 창조동산의 아름다움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을 때, 마침내 죽어가는 생명이 온전해져 되살아나 숨 쉬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또 한 번 ‘참 좋다’ 하실 줄 믿습니다.

<끝>

view_line3.gif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밤툰 - 100% 무료웹툰
마카오카지노후기 STC555.COM
스타클럽카지노 STC555.COM
정선카지노잭팟 STC555.COM
엠카지노 라스베가스슬롯머신 STC555.COM
엠카지노 정선카지노슬롯머신 STC555.COM
더카지노 카지노게임사이트 STC555.COM
F1카지노 영종도파라다이스 STC555.COM
슈퍼카지노 우리카지노주소 STC555.COM
대박카지노 카지노가입머니 STC555.COM
33카지노 카지노게임방법 STC555.COM
F1카지노 카지노슬롯머신 STC555.COM
슈퍼카지노 카지노사이트 STC555.COM
트럼프카지노 인터넷카지노 STC555.COM
더카지노주소 카지노노하우 STC555.COM
카지노사이트 라이브카지노 STC555.COM
에프원카지노 슈퍼카지노 STC555.COM
엠카지노주소 우리카지노 STC555.COM
개츠비카지노 F1카지노 STC555.COM
에비앙카지노 카지노예약 STC555.COM
슈퍼카지노주소 사설카지노 STC555.COM
대박카지노주소 카지노머신 STC555.COM
슈퍼카지노주소 슈퍼카지노 STC555.COM
대박카지노주소 스타카지노 STC555.COM
카지노사이트주소 w카지노 STC555.COM
개츠비카지노주소 엠카지노 STC555.COM
에비앙카지노주소 룰렛전략 STC555.COM
에비앙카지노주소 강친 STC555.COM
엠카지노 라스베가스슬롯머신 STC555.COM
더카지노 한게임포커머니시세 STC555.COM
엠카지노 정선카지노슬롯머신 STC555.COM
더카지노 카지노게임사이트 STC555.COM
카지노주소 카지노사이트주소 STC555.COM
F1카지노 영종도파라다이스 STC555.COM
대박카지노 카지노가입머니 STC555.COM
33카지노 카지노게임방법 STC555.COM
F1카지노 카지노슬롯머신 STC555.COM
슈퍼카지노 카지노사이트 STC555.COM
에프원카지노 트럼프카지노 STC555.COM
트럼프카지노 인터넷카지노 STC555.COM
개츠비카지노 트럼프카지노 STC555.COM
에비앙카지노 드래곤타이거 STC555.COM
트럼프카지노 33카지노 STC555.COM
개츠비카지노 F1카지노 STC555.COM
대박카지노주소 카지노머신 STC555.COM
슈퍼카지노주소 슈퍼카지노 STC555.COM
카지노사이트주소 w카지노 STC555.COM
에비앙카지노주소 룰렛전략 STC555.COM
개츠비카지노주소 호게임 STC555.COM
엠카지노 정선카지노슬롯머신 STC555.COM
더카지노 카지노게임사이트 STC555.COM
33카지노 카지노게임방법 STC555.COM
F1카지노 카지노슬롯머신 STC555.COM
슈퍼카지노 카지노사이트 STC555.COM
에프원카지노 트럼프카지노 STC555.COM
트럼프카지노 인터넷카지노 STC555.COM
개츠비카지노 트럼프카지노 STC555.COM
더카지노주소 카지노노하우 STC555.COM
카지노사이트 라이브카지노 STC555.COM
에프원카지노 슈퍼카지노 STC555.COM
트럼프카지노 33카지노 STC555.COM
엠카지노주소 우리카지노 STC555.COM

회원로그인



Copyright © 기독환경운동연대,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11길20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빌딩(CI빌딩) 202호 우 03735 TEL : 02-711-8905 FAX : 02-711-8935 E-mail : greenchurch@hanmail.net